목회를 하다보면 종종 반대에 부딪힌다. 몇몇 성도들이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의 성도가 불편해하는 상황을 만나기도한다. 대부분 평화로운 방법을 찾아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어느 순간에는 고민하고 기도하며 준비했던 것을 포기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나가야 하는 때가 있다. 어떤 경우는 설사 모든 성도가 반대하거나 나와 가까운 나를 지지하는 이들이나를 등진다고 하더라도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거나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내가 반응했던 목회의 코어이거나 할 때이다. 흔히 말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사람을 두려워 하리이까와 같은 경우이다.
이제 막 마흔을 조금 넘었지만 그리고 겉으로 보이기에는 두리뭉실 하하호호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15년 정도 사역하는 동안 비난을 마주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던 적도, 그로 인해 홀로 남았던 적도 있었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결정으로 교회를 사임한 경우도 있었다.
목사는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홀로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싸웠던 엘리야처럼, 풀무불에 던져지고 사자밥이 되어도 타협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세 친구와 다니엘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그와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이 국민과 싸우겠다고 선전포고하는 모습이 마치 하늘의 뜻을 받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당당하고 무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디선가 받는 확고한 지령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보다 더 마음이 아픈건 이를 지지하는 많은 목회자가 있다는 것이다. 계엄이 정의이고 정당함이라고 정치적 수단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하는 다른 목회자들을 비난한다.
나도 아들이 둘 있다. 잘 못하면 혼을 낸다. 몇 번을 경고해도 말을 안 들으면 회초리를 들기도 한다. 때로는 피곤하거나 힘들고감정이 상해 혼을 내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시간이 지나고 사과한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혼나야 할 것 이상으로 너에게 한것 같다고’ 말이다. 내 아이가 수 만번 나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고 집에 있는 칼을 꺼내 들고 협박하지 않는다. 월마트에 가서 총한 자루를 사와서 꺼내놓고 훈육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것은 양육자로써 정신을 잃은 폭력이며 아이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도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계엄으로 인한 아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탄핵에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치적 견해 차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치 계엄을 하나의 정치적수단으로 정당화하며 지지하는 목회자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더 간절한것은 설교시간의 대부분을 그 정당화를 설득하고 국민들을 종북세력으로 몰며 자신만이 의로운 목회자임을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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