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나와 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최근처럼 한국 기사를 많이 찾아 본적은 없었다. 지금 까지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일방적인 국정운영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 했고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한민국 군인의 손에 총을 들려대한민국 국민 앞에 세웠다. 우리 민족에게 이것은 상처이자 트라우마이며 해결되지 않은 그리고 이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아픔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것을 경험한 세대가 여전히 살아있는데 다시 그것을 대한민국의 일상에 꺼내놓았고 여전히 부정에 맞선 정의라고 주장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종종 싸웠다.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했다. 맞는 것보다 싫은 건 싸운 녀석이 엄마나 형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치사했다. 나는 첫 째였고 엄마는 내가 아주 엑티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야당의 의석이 많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것은 민주주의에서 허락하는 국민이 부여한 권한이다. 특검을 발의 하든 이런저런 법을 통과 시키든 그들의 권한 안에 있는 것이다. 이 권한을 계속 해서 잘 못 사용한다면다음번 총선에서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반대로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 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해왔던 특검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시간 민주주의, 특별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고민하고 경험하며 만들어 놓은 서로의 권한과 견제의 영역이다.
이 안에서 서로 주고 받고 찌르고 막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좋아하지 않는 정치다. 친구 끼리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주먹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형 혹은 일가친척, 아니면 같은 학교에 일하고 있는 선생님임과 동시에 가족인 누군가를 불러오는 것은 반칙인 것이다. 아니꼽고 답답하고 미워도 군인들을 시민들 앞에 세우면 안 되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것이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 군대를 일으켜 한 사람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공동체를 죽이겠다고 쫓아다녔던 사울이다. 치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인생을 사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사울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지하는 순간에는 진심을담아 미안함을 다윗에게 고백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와 같은 모습이 없다. 계엄 이후 담화에서도 여전히 야당을 향한 분노와 그로 인한 자신의 정당함을주장하려는 시도밖에 없다. 계속해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대국민 담화를 열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변명하며 국민을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며 비판하고 싸우겠다고 선포하며, 이것을 마치 유투브 개인 방송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윤석열 대통령의 이와 같은 모습은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별히 이 사람은좀 더 많은, 막강한 권력을 가졌을 뿐.
자신의 정당성을 들어내는 것, 나의 의로움을 밝히는 것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나를 반대하는 이들을 불편해하고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중심으로 세상이 돌기 원하고 나를 이해해 주고 나를 위로해 주기 바라는 것, 사실 우리 모두 안에 내재하고 있는 마음이고 모습이다. 다만 우리에게 적당한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어쩌면 우리는 모두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잠재적 윤대통령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는 그와 같은 권력을 갖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양심과 상식 그리고 건강한 관계에서 오는 삶의 교훈들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윤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지만, 순간 내 안에 우리 안에 그와 같은모습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그와 같이 하지는 않았는지 직장 상사로써 부하 직원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지, 식당 방문할 때 택시를 탈때 나를 섬기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지, 담임목사로써 부 교역자들에게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내가 가진 권력과 힘 안에서 누군가는 아마 이와 같은 계엄을 경험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니…손을 한번 올리는 것도 눈에 힘을 주는 것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도 돌아보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누군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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