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다.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한다. 목사는 예배를 준비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성도들을 상담한다. 이와 같은 것을‘사역을 한다’ 라고 표현한다. 사역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한가했던 적은 없다. 요즘은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가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 그 이유는 사역을 하는 것이 피곤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재정적으로는 궁핍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신학교 정원을 2천명이든 3천명이든 4천명이든 늘리는 것을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정원을 늘린 들 이만한 고등교육을 받고 험지 에서 적은 재정적 보수를 받으며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다수의 목사들의 삶이 어렵지만 이런 목사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는 사명 ‘콜링’ 이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다. 의사는 사람의 몸을 돌보는 일을 한다. 사람의 생명이 의사 손에 달려 있는 경우도 요즘은참 많다. 의사가 되게 하기 위한 의대의 정원을 늘리려고 한다.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의료계의 일손이 부족한 것과 의대를 가려는 이들이 충분히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많은 반대가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의 차이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중에 두 가지는 말하고 싶다.
먼저는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의대에 들어왔는데 나보다 덜한 사람들도 의대에 오게 하고 싶지 않다 라는 특권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쟤까지 의대에 들어오게 되면 나의 노력과 나의 가치가 희석 된다 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어서 경제적인이익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 많은 찬반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온전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는 파업 앞에서 사명감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약 분업 때부터 대한민국 의료계는 파업이라는 도구를 종종 사용한다.어찌 나라의 정책과 제도가 의사들에게 모두 만족스러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그것이 스스로를 의사 되게 하는 사명이었다면, 어떤 정책이 돈을 적게 벌게 하고 명성과 가치가 조금 떨어지게 한다고 해서 파업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때, 사명감을 가지고 선택한 직업인데 정부의 부실한 혹은 대책 없는 정책으로 인해 사명감에 상처를 입었다 느니, 그것이 사명감을 버리고 파업을 하게 했다 느니 하는 말은 생명을 다루는 사명감에 붙여 쓰기엔 너무 치졸한 핑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있다. 한 집에 살 던 두 여인이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는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눌러 숨지게 한다. 그리고는 살아있는 아이와 자신의 아이를 바꿔 치기 한다. 아침에 깨어 죽은 아이가 자기 품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 다른 여인은 이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솔로몬은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가를 판결하게 된다.
솔로몬은 공평하게 아이를 반으로 잘라 두 여인에게 나눠주라고 말한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 그러니까 자신의 아이가 숨진 여인은 좋은 판결이라며 그렇게 하라고 솔로몬의 판결을 받아드린다. 하지만 진짜 엄마는 눈 앞에서 아이가 반으로 잘리는 것을 결코볼 수 없었고 그 아이를 가짜 엄마에게 주라고 말한다. 물론 솔로몬은 아이를 자르지 말고 다른 여자에게 주라고 한 진짜 엄마를찾아 아이를 돌려준다.
이 진짜 엄마에게 자신이 진짜 엄마임을 증명 하는 것이나, 거짓말 하는 여자를 밝혀 내는 것 따위는 관심이 없다. 앞으로 자신의아이를 다른 여인이 기르며 보지 못하게 되는 것 그리고 다시는 아이의 엄마로 누리지 못하게 될 친밀감 역시 관심이 없다. 자신의 아이를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불공평한 세상, 가짜 엄마의 완악함, 솔로몬의 별볼일 없고 잔인한 판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돌보고 있던 환자를 두고 떠난 전공의들에게 파업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던 혹은 바로 잡고 지키고 했던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명감’ 으로 말하는 것이 영혼을 돌보는 목사로써 조금 불편한 것 같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더 나은 직업환경을위해, 더 고귀한 직업 종을 만들기 위해, 이와 같은 것은 파업의 이유로 적당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 사명감이라면 의사가 된 이유가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라면 파업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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